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르코 크로캅 (문단 편집) === 어린 시절 === 초등학교 때부터 런닝, 볏짚치기,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하였으며, 또래친구들이 즐기는 축구, 농구등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장 클로드 반담]]의 근육질 몸매에 반해서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직접 만든 운동기구를 사용하여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였다. 사는 곳이 시골마을이라 운동기구를 구할 수 없어서 철도원인 아버지가 가져온 철도부품에 콘크리트를 부어 역기를 만들거나 창고에 쇠막대기를 연결하는 등의 방식으로 직접 운동기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러닝을 마치고, 방과후엔 톱밥을 채워만든 샌드백에 펀치연습을 하거나 벽에 그려놓은 사람모양의 형상에 발차기 연습을 하는 등, 이미 학창시절부터 파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워낙 훈련강도가 강했던지 격투기 연습을 하면서 샌드백이 수시로 터져서 수백번이나 고치면서 사용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본격적인 격투기 훈련은 고등학교 때 마을 인근의 태권도 도장에 다니면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크로캅의 주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하이킥도 이때 배운 태권도에 영향을 받았다고 크로캅은 회고한 바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때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이 발발하여 크로캅은 태권도 수련을 중단하고 가족들과 함께 피난을 떠나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고향마을은 6000발의 포탄을 맞고 쑥대밭이 되어버리고, 크로캅의 가족들은 집도 재산도 모두 잃고 남의 집에 빌붙어사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특히 고향친구들이 눈앞에서 폭사하는 광경을 목격한 크로캅은 이 때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느날 밤 나는 내 친구와 함께 고향에 있는 모래언덕 뒤에 숨어있는데, 탱크부대 한 무리가 어디선가 나타나더니 부근의 다리를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그뒤 폭격이 시작되었는데, 불행히도 그 공격으로 인해 어린아이 2명과 내 친구들이 사망하였다. 초원에 지어진 집들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탱크가 진군하면서 집들을 깔아뭉개버린 것이다." 전쟁이 지속되는 와중에서도 격투기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는지, 크로캅은 새로운 체육관을 찾아나선다. 킥복싱 체육관을 염두에 두고 근방을 물색하였지만, 찾아낸 유일한 체육관이라곤 가라데 도장뿐이었다. 그리하여 가라데로 다시 수련을 재개하지만 가라데의 실전과 동떨어진 형 위주의 수련은 크로캅에게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크로캅은 5~6명의 남성들이 글러브와 보호장구를 착용한 채 복싱훈련을 하고있는 걸 목격한다. 순간 무언가에 홀린 듯 그들에게 다가가, 그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코치를 맡고 있는 사람에게 '저들과 한판 붙어도 되겠느냐?' 고 물어본다. 코치는 '해봐라. 상관 안 할테니 가서 붙어 봐라'며 흔쾌히 도전을 받아들인다. 그 대결에서 크로캅은 흠씬 두들겨 맞았으나 복싱의 강함에 매료되어 그 뒤부터 복싱훈련에 매진하게 된다. 학교수업이 끝나자마자 복싱체육관으로 달려가서 체육관 문이 열리기도 전에 1-2시간씩 기다렸고, 훈련시간이 끝난뒤에도 저녁 늦게까지 추가훈련을 하였다고 한다. 복싱이 소질에 맞았던지, 크로캅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여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합류할 정도가 되었다. 1993년(혹은 1992년) 크로캅은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당시엔 아직 내전이 끝나지 않은 때라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때 전장에서 소총을 든 적들과 마주한 경험이 훗날 링 위에서 냉정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종전을 1년 앞둔 1994년 군복무중이던 크로캅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게된다. 크로캅은 아버지를 잃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며 훗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20살이었고 군복무중이었다. 그때까지 아버지와 나는 남자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는데, 그것이 평생의 후회로 남는다. 차고에서 3~4시간씩 밤늦게까지 훈련할 때마다, 아버지께서 들어오셔서 그만 자야할 시간이라고 말씀해주시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때 전쟁에 참여한 경력 때문에 훗날 크로캅은 ufc시합차 캐나다에 입국했을 때, 캐나다 입국관리국에서 전쟁범죄혐의로 4시간이 넘게 취조를 받은 적이 있다. 크로캅 본인은 당시 전쟁에서 직접적인 전투에 참가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이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수차례 교전경험이 있었음을 밝힌 적이 있어 논란이 된 바 있다. 제대 후 크로캅은 막막한 처지에 놓였다. 전쟁으로 집과 재산을 잃어 가세가 기운데다, 부친은 돈 한푼 남기지 않고 사망했기에 격투기 수련은커녕 가족부양에도 빠듯할 지경이었다. 어릴 적 꿈이었던 경찰이 되기위해 1995년 크로캅은 자그레브로 상경하여 경찰학교입학시험에 응시하지만, 나온 점수는 합격선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인맥으로 대뒀던 연줄을 활용하여 결국 경찰관으로 정식 임용된다. 이는 크로캅 본인이 직접 다큐멘터리에서 밝힌 사실이다. 그 뒤, 사업가였던 즈보니미르란 사람이 크로캅의 후원자가 되어주면서 크로캅은 본격적으로 격투기훈련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프라이드에서 활동하던 당시 그의 회사인 Zvonimir Security(보안관련 업체로 추정) 로고가 붙어있는 티셔츠를 입고 크로캅이 나온적이 있었는데 열혈팬들은 격투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 티셔츠를 사입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